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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사장 | 나라를 위한 기도/다니엘 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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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사장 작성일16-09-06 09:46 조회2,7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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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기도
                                                                     
다니엘 9:1~26

대부분의 한국의 교회는 6월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달로 지킵니다. 6월 6일은 헌충일이며 6.25은 한국동란 기념일입니다. 보수적인 분들은 역사적 명칭인 한국동란이란 말보다는 6.25동란 혹은 6.25사변이라 부르기를 좋아합니다만, 정식명칭은 한국동란입니다. 어쨌든 현대 한국역사에 있어 6월은 민족적 비극이 일어난 달입니다. 소위 同族相爭이 일어난 달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 휴전후 외세에 의해우리가 원치않지만 나라가 두동강이 나서 반세기가 훌쩍넘어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이 화해구도속에 경협도 이루어지고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개성 심지어는 백두산관광까지 이루어져 남북이 통일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서해에서 해군함정 무력충돌이 빈번하더니 드디어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완전히 남북이 경색국면에 들어가게 되어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대치 속에서 다시 6월을 맞게 되었습니다.

세계대전후 두동강이 난 나라들이 몇몇이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두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며 월맹과 월남의 통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통일이 요원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안에서도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니 해서 도무지 통일에 대한 진정성을 찾을 길이 없는 정치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니 해외에 있는 우리들은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조 5백년의 사색당파 싸움과 진배없는 형국입니다. 이에 질세라 한국의 교회와 그 지도자들 조차 파당이 되어 물고 찢기를 계속하고 강단이 정치강연장을 뜸뜨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곧 있을 것 같은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형편가운데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태평성세를 구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이민오던 1988년에는 한강을 따라 휴전선까지 북상하는 통일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 길을 여러번 달려보았는데 불과 한시간도 걸리지 않아 북한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참 기이한 일은 이 휴전선을 코앞에 둔 일산의 전망대앞은 완전 서울 시민의 놀이터가 되어서 먹자 골목이 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완전 정신무장 해제한 국민이란 생각을 지울길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불안을 조성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6.25 때도 참으로 한가한 주일을 맞아 전선에서 많은 군인들이 휴가를 나왔고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 없이 느긋한 주일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전면전을 예상치 못한 바로 그때  쏘련 전차의 케타필러소리 요란하게 삼팔선이 뭉게져 버렸던 것입니다.  전쟁을 그 누구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한국동란때 3살이었습니다. 어렴프시 생각나는 것은 서울 북아현동 제 집 방공호에서 이북으로 납치된 제 막내고모님 무릎에 앉아 비행기 폭격소리를 듣고 먼지가 풀석였던 기억입니다. 그고모님은 이북미인으로 서울 배화여고의 학생호국단장을 지내기도 한 분이었는데 일설에는 미아리고개를 끌려 넘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도 그때 돌아가셨을 것으로 압니다. 제 아버님을 비롯한 숙부 여러분들이 공산군에게 붙잡혀 생사간에 있을때 기적적으로 생환하였으며 당시 대한통운에 근무하던(그때는 마라보시라 했음) 작은 숙부 한분덕에 화물열차를 얻어 타고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습니다. 몇날 몇일을 가는동안 피난 짐들이 떨어져 잃어버린 것 하며,

제 아버님은 화물차에서 떨어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셨으며 화물열차간에서 먹던 막김밥도 생각납니다. 부산 초량역에서 내려 어디서 구했는지 리어카에 짐을 싣고 제가 그위에 타고 남부민동의 어는 이발소 윗집 큰 다다미 방 한칸에 대가족이 몰려 살게 되었던 일이 다 생각납니다.  부산으로 밀려든 피난민 덕에 부산의 산이란 산은 모두 판잣집으로 가득찼습니다. 지금도 외국의 배들이 밤에 부산항에 입항할 때 부산의 산들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명멸하는 전등행렬에 나폴리같은 느낌을 받는다지만 사실 이 모든 광경은 한국동란의 결과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부산 피난생활중에 가장 크게 기억되는 것은 몇 번이나 일어났던 국제시장의 대화재사건입니다. 삼촌들이 그때 시장에서 헐값으로 팔아 넘기는 설탕을 입힌 비스킷을 한 상자 사와서 실컷 먹던 생각이며 피난지에서 들어갔던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다니려면 산비탈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비오는날이면 흙탕물이 도도하게 흘러 학교를 가지 못했던 생각도 생생합니다. 9.28수복후 가장 먼저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 중에 우리 가족이 끼었는데 그때도 대한통운덕을 보았고 거처도 북아현동의 마라보시 2층집 사택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충정로에 있는 미동 국민 학교 다니다 보면 그 산길에 시체가 여기 저기에 널려 있고 집들이 파괴되어 을씬년 스럽던 때였습니다. 이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젠 그때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안함사건을 보면 참으로 그럴까 하는 우려에 접하게 됩니다. 한번도 한국이 북한에 대해 우세에 있던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연평해전인가요 하는 것 하나 빼고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동해 울진사건 등등 모두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그 후에는 그저 엄포만 노았지 별반 실효성있는 반격다운 반격을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은 전방위적으로 무방비인것 같은 생각을 접을 길이 없습니다.

육군소장이 간첩에 군사기밀을 넘겨주는가 하면 나라의 간성이라고 하는 사관생도 중에도 주적은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하니 그것이 정말이라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지어는 미국에서 살면서 온갖 미국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미국을 힐난하며 한국동란의 책임을 돌리려 하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러면 저들은 중공의 개입을 요청한 자들에 대해서는 왜 함구합니까? 친미를 반대하면 친중도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좌괴감이 몰려 옵니다. 나라가 약소해서 어쩔수 없어 이쪽이나 저쪽이나 외세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우리 신세가 처량 할 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합니다. 어쩔 수 없이 외세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면 그나마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간섭없이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싯점에사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십대 때 바벨론에 잡혀와 평생을 바벨론을 섬기며 살았던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기에 경건하게 살기를 힘썼고 평생을 주님을 향해 살았습니다. 이런 그는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가 지금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다니엘서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붙잡았습니다.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는 앞선 선지자 에레미야의 글을 읽는 중에 큰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민족의 통일, 국가의 통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붙잡고 읽어야 할 때입니다. “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 이 말씀은 굉장한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 말하지 않고 자신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 어찌하든 오늘 내가 다니엘이 서책을 붙잡은 것처럼 오늘 내가 이 성경책을 붙잡아야 합니다. 점점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 말하는 책들은 좋아하고 읽지만 정작 성경책은 읽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말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십판 수백판을 거듭 찍어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얼마전 작고한 법정의 책들이 매진되어 사람들이 간절히 계속 재판해 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들을 보면 나오자 마자 수십판을 거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오스틴의 책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줍니까? 아닙니다. 참고는 되겠지만 그의 말과 글들을 우리가 생명을 걸고 붙잡을 것은 아닙니다. “ 나 정인량은 조엘 오스틴의 책으로 말미암아 ”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나 정인량은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오늘날 평신도 보다 오히려 목사들이 더 영적으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너무도 편리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 나는 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 하지않고 “ 나는 이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 할 수 있는 유혹에 빠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빠져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이 예수로 말하면! 이 복음으로 말하면! 하고 로마서 1장에서 외친 것 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학과 교리에 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깨달은 경건한 목회선배들의 설교집도 참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짜 말씀 이 날 것 같은 말씀에 치심해야 할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 이렇게 말했더라! 저렇게 말했더라“고 가지고는 힘이 없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한것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일리는 있는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니엘 때에도 율법사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런 사람들의 견해나 의견으로 말미암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자주 강단에서 불트만이나 본웨퍼가 인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자주 대 교회의 목사들의 말들을 인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라 한 것이 대단한 영감을 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제 친구가운데 김양일 목사라는 동갑내기 목사가 있는데 이 분은 성경통독집회를 인도하는 분입니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이번에도 크리스챤하우스에서 3일동안 성경통독집회를 은혜중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중차대한 전환점에 말씀을 붙잡는 운동이 벌어져야합니다. 이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하는 케치프레이즈가 널리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나라를 위한 기도는 이렇게 말씀을 붙잡고 읽고 깨닫는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바르게 기도하고 싶으십니까? 다니엘 처럼 서책 곧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

본문 둘째 단락의 열쇄는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하기를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심에 여러 가지 조건이나 행위가 딸려있습니다.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는 것은 기도하는자의 간절한 모습을 행위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응답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조건들이 연이어 나옵니다.

1. 하나님께 자복하였다는 것입니다.
“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다시 말하면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죄를 감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범죄의 내용인즉 패역한것이며 행악한것이며 반역한것이고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난 것이며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한 것이라고 낱낱이 고합니다. 근래 한국교회가 평양부흥 백주년을 마지하여 회개운동을 전개한바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니함만 못했습니다. 형식적이고 두루뭉실이고 우물쭈물한 운동이었습니다, 무언가 하기는 하여야겠는데 강박관념에서 해치운감이 없지않습니다.


이런 것은 참으로 더 악한 것입니다. 이런 회개는 운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발생적인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령께서 직접 불을 지피셔야 됩니다. 평양의 대부흥운동은 성령의 직접역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의 준비로 됩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 그 시작이었듯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 누군가 한 사람 준비된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가장 악한 것은 직접 범죄한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말씀도 깨닫고 죄악도 떠나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중차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그 어느때 보다도 자신만만한 가운데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인본주의적 자신만만함 기세등등함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구장창 되뇌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이룩한 모든 공로를 의지합니다.

거대한 예배당왕국을 자신의 근거로 삼고, 자신을 추종하는 큰 무리를 믿고 큰 소리 땅땅칩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재정이 그의 신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왜 필요합니까? 진정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다니엘의 때가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암만 주의 은혜를 강조한다 하여도 그 腹心에 가득찬 공로를 다 내려놓지 않는다면 다 헛것입니다. 한번 누구든 예를 들어보세요! 누구 누구 말할 것 없이 다 욕심 주머니를 따로 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치 않습니다. 누구는 설교잘하는다는 주머니를 차고 있습니다. 누구는 행정을 잘 한다는 주머니를 차고 있습니다. 심지어 누구는 착한 선행을 많이 한다는 주머니를 차고 있습니다. 누구는 교권을 차고 그 앞에 줄지어선 사람들을 보고 뻐기는 주머니를 차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까? 무엇이든지 다 가졌는데 왜 하나님의 은혜를 찾습니까? 오늘의 세대는 하나님의 은총을 진정으로 찾는 세대가 아닙니다.

3. 주여 이제 내가 구하옵나니 그렇습니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비로서 구할수 있는 자세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기도와 간구의 결심은 회개와 자복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읍소합니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보옵소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구구절절하지 않습니까? 마치 압복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과 같은 처절한 기도 사투의 기도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위한 기도라면 적어도 이정도의 내용이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니엘에게 은총을 주었습니다.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리고 이상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바마를 믿을 것도 없고 원자바오를 믿을 것도 못됩니다. 이명박을 믿을 것도 못됩니다. 이번 중간선거에 보니까 완전 허당입니다. 김정일은 더더욱 말 할것도 없구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다같이 주신 말씀생각하면서 한국의 통일을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